조지 오웰로 당권파를 읽는다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고만고만한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삶에서야 말로 심오함을 발견할 수 있는 거라고 추리소설가인 저는 믿고 있습니다. ...... 그래서 대중에 영합하는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 트위터 @jhyong91, 이메일 jhyong91@naver.com
BY : 정혁용 | 2012.05.31 | 덧글수(8) | 트랙백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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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당권파 뿐만이 아니라 어떤 부류든 그 사상이 내셔널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분석은 조지 오웰이 아주 냉정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에세이 내셔널리즘에 대해서,에서 썼다는 것, 그리고 그런 분석이 어떻게 가능했는 가는 오웰의 인생을 짧게나마 기술함으로서 설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포함한다. 역순으로 설명하고 세가지 내용을 포함하기에 이 글은 조금 길어질 수도 있겠다(내셔널리즘을 굳이 국수주의 같은 한정된 언어로 번역하지 않은 까닭은 본문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나, 라는 인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

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다. 그러니까 똘이장군이 북한의 수령돼지를 때려잡고, 공산당은 콩사탕만도 못하며, 빨갱이는 사람을 잡아먹는 늑대라서 잡아 족쳐야 할 짐승이라고 교육을 받은 세대인 거다. 해서 조지 오웰하면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 라고 세례 요한도 아닌 주제에 광야에서 홀로 외치는 사람 같아서 참 읽기가 싫었더랬다. 기껏 떠오르는 이미지라고는1984, 동물농장, 빅 브라더, 백남준, 정도의 단어 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유진영에서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는데 요긴한 선전물로 쓰인 게 그의 책 아닌가.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상대의 체제를 우화처럼 비판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해서 오랫동안 그의 책을 읽지 않았었다. 흔히 말하듯 이름은 알지만 읽어보지는 않은 고전 중의 하나로 있었던 거다. 그러던 어느날 EBS 지식채널에서 조지 오웰 편을보고 그만 감동해 버리고 말았다(아마 작년이었던 것 같은데, 코끼리를 쏘다, 라는 에세이가 바탕이었다).

실천적이고, 때문에 방황하고 상처받지만, 온 힘을 다해 견뎌내는 참 지식인의 모습을, 비겁, 자잔, 소심함을 삶을 모토로 하는 내가, 재수 없게도 봐버린 거다. 그것은 내게 주입되어 있던 오웰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그의 에세이부터 르포따쥬와 소설까지(오웰에게는 두 종류의 독자층이 있다.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접하는 소설가 오웰과, 영국인들이 접하는 에세이스트인 오웰.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 그의 에세이가 더 탁월하다고 느낀다). 번역서가 많지 않은 게 흠이긴 했지만 그 적은 양으로도 오웰이 얼마나 훌륭한 작가인지 알기에는 충분했다.

오웰의 인생은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소년기에는 형편도 안 되는 주제에 귀족과 부유계층이나 받아들이는 학교에 장학생으로 다녔다(지금으로 치면 아버지가 7급 공무원 정도라 볼 수 있겠다). 가뜩이나 문학적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으니 환경 때문에 받는 온갖 정신적인 충격을 온몸으로 겪었을 거다(무엇보다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모습에 절망했을 거다. 그런 기분이라면 나도 좀 안다). 게다가 식민지(버마) 경찰로서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제국주의 괴물이 닮아가고 있는 지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았다(그렇다고 도덕군자로 살았다는 뜻은 아니다. 창녀도 사고 술도 마시고 하인도 패고 할 짓은 다했다. 죄책감을 느꼈다는 거지). 그 뒤로 영국과 파리를 오가며 노숙자의 삶을 살면서 빈민 계급을 겪었고,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으며, 책을 써서 먹고 살만하게 된 건 죽기 얼마 전이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비참하게 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민층의 자제가 귀족들과 같이 학교를 다님으로 인한 계급의 차별, 제국주의 나라에서 식민지 경찰을 함으로 인한 죄의식은 권력지향의 위선자가 되던가, 아님 자신의 인간본성을 까발림 당하고 현실을 맹목적으로 비판만 하는 자로 만들기 쉬운데, 오웰은 죽을 때까지 객관적인 자기비평과 세상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놓지 않았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오웰에 대해 평가한 말들이 있다.

오웰은 상징이 되기엔 너무 혼자였고, 성자가 되기엔 너무 분노했다… 나는 살아온 인간과 글로 표현된 인간의 모습이 이토록 일치하는 작가를 결코 만난 적이 없다. -가인 우드콕

오켠데 그는 내부비판자였다. 무지와 편견으로 좌파 일각이 그를 변절자로 매도하고 정치적 우익이 그를 선각자로 추켜세웠다 해서 이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조지오웰, 지식인에 관한 보고서 서문. 고세훈

정확하다. 하지만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그가 사회주의자였다(사회주의 바판자인 줄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 동물농장이나 1984는 사회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어떤 체제든 내셔널리즘으로 흐를 때의 문제점들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는 거다(이건 내 생각이다). 그것은 그의 말들을 몇 가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화 했다고 해서 문학이 대중에게 접근한 것은 아니다.

말 잘하는 공산당원은 겉보기는 국제적 사회주의자지만 사실상 러시아의 광고 대행업자일 뿐이다.

실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직장이 없다는 것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불황의 밑바닥에서도 직장을 얻을 수는 있다. 문제는 사물을 사고할 수 있는 인간에게 그 가치를 믿을 수 있게 하는 활동이 아무것도 없다는 데 있다.

어쩔 수 없는 살해, 라는 말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이런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살해란 기껏 말뿐인 인간만이 쓸 수 있다. 나라면 이렇게 경솔하게 쓰지 않겠다. 나는 살해란 어떤 것인가를 다소간 알고 있다. 공포, 증오, 울부짖는 육친, 검시, 피, 죽음의 냄새라는 것을……오든 씨와 같은 도덕 결핍증은 방아쇠를 당기는 현장에 없었던 인간에게만 생기는 증세다. 좌익사상에는 불이 뜨거운 것조차 모르는 인간의 불장난 같은 것이 너무나 많다.

계급 차별을 철폐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 중산층의 전형적인 일원인 내가 있다. 내가 계급 차별을 없애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거의 모든 것은 계급 차별의 산물이다. 나의 모든 관념은 어쩔 수 없이 ‘중산층’의 관념이다. 책과 옷과 음식에 대한 나의 취향, 명예에 대한 나의 감각, 나의 염치, 나의 식사예절, 나의 어투등 전부 특정한 훈육의 산물이며, 사회 위계의 윗부분에 있는 특정한 지위의 산물이다. 그런 사실을 이해할 때, 나는 프롤레타리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이런 그의 말을 듣고 있자면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 정확한 비평과 식견에 신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길었다. 아무튼 그래서 조지 오웰이다. 지금의 당권파, 혹은 정치권력이, 혹은 조계종 사태가, 기타 권력을 잡았거나 지향하는 모든 세력이 왜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들을 태연하게 벌이고는, 역시 말도 안되는 논리로 변명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그의 에세이 내셔널리즘에 대하여,를 인용해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아래는 그 글의 일부이다.

내서널리즘이라 했을 때 내가 맨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인간을 곤충과 마찬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몇 백만 혹은 몇 천만이라는 집단을 하나로 묶어 태연히 선, 악의 레테르를 붙일 수 있다고 결정하는 사고방식이다. 그 다음에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하나의 국가 혹은 이것과 비슷한 어떤 것의 조직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선악을 초월한 차원에다 두고, 그 이익을 추진하는 일 이외에는 일체의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사고방식이다. 내셔날리즘과 애국심은 분명히 다르다. 두 개의 말은 보통 극히 애매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정의를 내려 봐도 이론이 나오겠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의 상이하다기보다는 대립하는 개념이 숨어 있어서양자는 분명히 구별해 두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애국심이라 부르는 건 특정한 장소 및 생활 양식에 대한 헌신적 애정으로, 그 장소와 생활양식이야말로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것을 타인에게까지 강요하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애국심은 군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본래 방어적인 것이다. 하지만 내셔널리즘 쪽은 권력 지향과 굳게 연결돼 있다. 내셔널리스트인 자는 항상 보다 강대한 권력, 보다 강대한 위신을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개인으로서의 자기를 버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매몰시키는 대상으로서 선택한 국가라든가 이것에 유사한 조직을 위해서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넓은 의미의 내셔널리즘이란 공산주의, 정치적 가톨리시즘, 시오니즘, 유태인 차별, 트로츠키즘, 평화주의라는 운동 내지 풍조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1정부, 1국가의 충성심이라고만 할 수 없고 하물며 자신의 조국에의 충성심일 필요도 없다. 그렇기는커녕 그 대상이 되는 조직이 반드시 현실에 존재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내셔널리스트란 위신 경쟁이란 관점에서밖에 생각되지 않는, 적어도 우선 그것을 생각하는 인간인 것이다. 즉 뒤에서 밀어주기 위해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할 경우도 있는가 하면 끌어내리는 경우에 사용할 수도 있으나 어느 쪽이든 그 생각은 항상 승리냐 패배냐, 영광이냐 굴욕이냐 하는 사상을 축으로 회전한다. 내셔널리스트는 역사를, 그것도 특히 현대사를 커다란 세력의 끝없는 흥망으로 포착한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온갖 사건이, 자신의 진영은 오르막길에 있고 미워해 마지않을 적은 내리막길에 있는 증거로 보이는 것이다.

내셔널리스트는 가장 강한 것의 편을 든다는 단순한 원리는 채택하지 않는다. 반대로 일단 자기 입장을 결정한 뒤에는 그것이 ‘사실’ 가장 강한 것이라고 자신에게 납득시키기에, 객관적인 정세가 아무리 압도적으로 나빠도 이 신념을 고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셔널리즘은 자기기만을 포함하는 권력 지망인 것이다. 내셔널리스트인 자는 예외 없이 아무리 꼴사나운 불성실한 행위라도 해낼 수 있는데-자신보다 큰 것에 희생한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자신은 절대로 옳다고 하는 부동의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셔널리스틕한 사상의 주된 특징을 열거해 본다.

편집(編執). 내셔널리스트는 모두 자기가 속한 힘있는 조직의 우월성 이외의 것은 되도록 생각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쓰지도 않는다. 내셔널리스트가 그 충성심을 숨긴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무척이나 어렵다.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중상을 하거나 경쟁 상대의 조직을 암암리에 찬양하는 말을 들으면, 마음의 평온을 잃고 통렬하게 반론을 퍼붓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 내셔널리스트는 모두 자신들의 언어를 확산시켜 상대측의 언어를 추락시키는 것을 의무로 생각하는 법이다.

불안정(不安定). 내셔널리스트의 충성심은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대상이 간단히 변하는 수가 있다….. 시종 변하지 않는 것은 그 정신상태 뿐이며, 감정의 대상 그 자체는 변할 수도 있고, 가공적인 것이라도 무방한 것이다….. 충성심의 대상을 옮겨 바꿔치기한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희생양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스스로의 행동은 고치지 않은 채 구원을 얻는 한 가지 방법인 것이다.

현실무시(現實無視). 내셔널리스트는 모두, 똑같은 사실을 몇 가지나 보아도 그 상호간의 유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특기를 지니고 있다…. 행위의 선악을 판정하는 기준은 그 행위 자체의 공죄가 아니라 누가 했느냐는 점에 있으며, 고문, 인질, 강제노동, 강제적 집단 이주, 재판을 거치지 않은 투옥, 문서 위조, 암살, 비전투원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러한 더없이 무법한 행위라도 그것을 한 자가 ‘내 편’이면 우선 대체로 도덕적인 의미가 미묘하게 변질되어 버린다…. 내셔널리스트는 자기편의 잔학 행위는 비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귀에도 들리지 않는다는 훌륭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내셔널리스트의 사고방식 가운데는 진실한 것인데도 거짓말, 알고 있는데도 모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 사실이 여러 가지가 있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차마 인정할 수가 없어서 옆으로 밀어 놓은 채 의식적으로 논리적인 사고로부터 제거당하는 수도 있거니와, 면밀히 검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혼자만의 마음속에서조차 사실임을 절대도 인정하지 않는 수가 있다….

내셔널리스트라는 것은 끊임없이 권력, 승리, 패배, 복수 따위를 생각하는 주제에 현실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드물지 않다. 요는 자신이 속하는 조직이 타의 조직을 압도하고 있다는 기분을 맛보기 위한 것일 뿐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을 조사해서 자설(自設)의 근거를 확인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적을 공격하는 쪽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내셔널리스트의 논쟁은 모두 토론 클럽의 수준 정도밖에 안된다. 어떤 논자도 반드시 자신이 승리한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결론 따위가 나올 리 없다. 일부 내셔널리스트는 정신 분영증이라 해도 좋으며, 현실 세계와는 무관한 권력과 승리라는 참으로 행복한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정확한 분석이지 않은가? 편집, 불안정, 현실무시.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왜 일련의 최근 사태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지 이해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하나다.

이데올로기를 가질 자격이 있는 자는 일관된 도덕성,즉 인간에 대한 휴머니즘을 갖고 있는 자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데올로기는 살인자의 손에 총을 쥐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그런 자들은 이데올로기라는 이름하에 인간의 생명마저 하찮게 버린다, 는 것이다.

은하영웅전설의 다나카 요시키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사상이 있다. 하나는 생명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보다 가치 있는 게 있다는 것이다. 모르겠다. 생명보다 가치 있는 사상이 있는 지는. 하지만 있다고 해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그 사상을 강요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일은,

인간으로서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다.

*참고문헌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보고서, 고세훈, 한길사.

에세이 선, 오국근 역, 금성출판.

위건부두로 가는 길, 이한중,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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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ademy 2012/05/31 17:47

시간을 죽이고자 들어선 런던의 어느 서점에서 그의 작품들을 발견하고 한참 동안 그 자리를 지켰던 적이 있습니다. 조지 오웰이라야 동물농장과 1984, 카타로니아 찬가 정도 알고 있었는데, 그 외의 작품들을 발견하고는 우물안의 개구리로 살고 있는 저 자신을 보게 되었고, 동시에 이 작품들이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되면 좋겠다는 생각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 국내 독자들에게는 다행이고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게도- 그의 몇몇 작품이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했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조지 오웰의 작품들은 오늘의 한국사회에, 특히 먹물 좀 드신 ‘잘나신’ 양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물론 그런 양반들이야 공사가 다망하셔서 그의 작품을 읽고 본인을 돌이켜볼 시간이 없으시겠지만서도 말입니다…..요컨대, 저의 말씀은, 글 잘 읽었습니다..요 입니다.

    정혁용 2012/06/01 12:29

    저도 댓글,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요.^^:

ekim543 2012/05/31 21:59

제가 읽은 조지 오웰의 책 몇권은 다음과 같읍니다: 1984, 동물농장, 빅 브라더, 단편 코끼리를 쏘다.
그러나 그가 사회주의자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읍니다. 님의 글을 읽고 깨달은 바가 큼니다.

    정혁용 2012/06/01 12:30

    이런 사회주의자가 될 수 있다면, 저는 사회주의자가 되고 싶습니다. 함량 미달이라 그렇지요.

han00 2012/06/01 12:24

항상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적인 사고를 갖으려고 소위 진보성향이 강한 오피니언에 자주 들려서 글을 자주 읽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글을 보면 귀하가 말하는 내셔널리스들이 글을 많이 게재되고 있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이념이 편향되어 다른 한쪽을 못 보고 자기의 의견이 최고인 양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올리면 즉각적인 신경질적인 반응에 심하면 쌍욕까지 합니다. 오피니언이라면 독자의 비판 밒 비난을 감수하려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습니다. 전형적인 내셔널리즘을 갖은 오피니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귀하의 글을 읽고 내셔널리즘과 애국심을 구분할 줄 아는 애국시민이 많이 있어야 우리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셔널리즘은 유아독존적이어서 나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중독성이 강해서 대중들에게 강하게 어필되어 대중을 선동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애국심을 가진 보통시민들이 많아야 유혹에 빠져들지 않고 건전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가는 보통시민의 의식을 갖은 중산층을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직업의 기회와 소득을 증대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혁용 2012/06/01 12:39

    사실 인간인 이상 비판도 그닥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다른 견해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다독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비난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의견이 다르면 안받아들이면 그 뿐이지 욕먹을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래야된다면 성직자가 되어야지 얄궂은 칼럼이나 쓰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국적 따위는 주소이전 신고처럼 간단히 할 수 있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그런 조건이 전쟁이 없어지는 첫 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계약적인 의무는 수행하지만 한국인이라는 특별한 애착은 없습니다. 어쩌면 일반인이 말하는 애국심은 전혀 없는 사람일 지 모르겠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전쟁이 나면 싸우러 나가겠지만, 그건 한국인이라서기 보다, 아직 현실적으로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겁니다. 해서저는 국가대항 스포츠도 관심없는 사람입니다. 어설픈 민족주의만 키운다고 보거든요.
    전 한국인보다 그냥 인간인 게 좋습니다. 미국인도 일본인도 기타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냥 인간으로만 보고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choe62 2012/06/08 10:00

젊어서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 부러웠고 나도 그런 신념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신념있는 사람이 무섭더군요.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에 확신범이 제일 무섭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지금은 그 사람의 신념보다 신념의 출발점 그리고 그러한 신념의 표출방식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즉 인간애와 합리성으로 신념을 설파하는 사람들을 다시보려고 노력합니다. 오웰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menhir 2012/06/16 23:46

본글도 의미가 있고 댓글들도 의미가 있습니다만 뭔가를 간과한 것 같아 한 마디 합니다.
이데올로기, 신념 등의 용어가 나오고 그걸 지니느냐 아니냐란 말이 나오는데, 그게 없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의 차이점은 명시적으로 분류되고 거창하게 상징화된 걸 가졌느냐 분류에서 빠진 잡다한 걸 가졌느냐의 차이죠. 이데올로기나 신념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황금만능주의, 보신주의, 기회주의, 본능주의, 충동주의, 군중심리주의 등 이데올로기로 분류되지 않은 뭔가는 가졌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들이 더 순수하거나 무구하거나 하지 않고 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하지 않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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