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수꾼〉,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네…

문화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으며, 말랑말랑한 음악, 조용한 곳을 좋아한다. 항상 어디론가 훌쩍 떠날곳을 고민하며, 언제까지나 '상실의 시대' 속 미도리로 살고 싶다. 주말에는 EPL 첼시 광팬으로 돌변한다. 트위터 @missj1227 블로그 http://blog.naver.com/toyeyeskh
BY : 조혜림 | 2012.03.22 | 덧글수(0) | 트랙백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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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파수꾼

영화 파수꾼은 성인남자와 소년의 미묘한 경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누구나 한번쯤 느껴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 미안하단 말을 꺼내기 조차 힘든 너무도 늦은 후회들을 저지른 부서질것 같은 나약한 인간의 단상을 보여준다.

기태란 아이는 편 부모란 것에 컴플렉스를 느끼고, 중학교까지 존재감이라곤 없던 자신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짱’의 자리에 위치하며 아이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주목 받는 걸 즐거워하고 들 떠했던 아이. 하지만 그 아이는 사실 진심으로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했다.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아이. 허나 그 누구보다 표현이 서툴고, 그 누구도 진실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던 아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의 말을 내뱉고, 그토록 아끼던 친구들의 돌아섬을 느끼고, 자신의 편이라곤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멀어져 버렸다.

2.오해는 새로운 오해를 낳고, 상처를 더 벌어지게 한다.

거짓말을 들은 사람은 그 상대방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허나 거짓말을 한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을 내 뱉었다는 것에서 오는 혐오감과 함께 나도 거짓말을 했으니 이제 세상도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 즉 무엇을 믿기가 참으로 두려워 지는 것이다. 이것이 거짓말을 한 자에 대한 벌이라면 벌일까?
하지만, 거짓이라면 항상 진실이란 것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진실이 공개되면 용서를 받고 받지 않음과 관계없이 수학공식처럼 눈에 보여지는 유형의 답이 있어 이미 벌어진 상처를 더욱 악화 시키진 않을 것이다.
허나 슬프게도 거짓말이란 것은 혼자 오지 않고, 오해란 이름의 작디 작은 기생충 알을 품고 온다. 오해는 거짓말과는 조금 다르다. 하늘을 모두 가릴 순 없지만, 손으로 상대의 눈을 가려 하늘을 보지 못하게 할 순 있지 않은가?이처럼 서로간의 관점과 입장, 작은 표현 방법의 차이가 상대의 시야를 가려 빚어내는 오해는 맑은 물에 떨어진 한 방울의 흙탕물처럼, 조금이지만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본질을 더럽혀 버린다. 오해는 결국 누군가가 “그건 오해였어” 라며 사과의 손을 내밀고, 과정을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 한다. 거짓은 진실을 숨기는 것이지만, 오해는 잘못된 해석과 그릇된 표현방식으로 인해 딱히 숨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런 말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정말 100프로 자신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하고 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상대의 의중을 100프로 알 수 없다.  ‘말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말하고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아니, 이 사회는 그 누구도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오늘날의 사회는 착한 사람의 착한 표현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고, 자연히 남을 속이고 괴롭히고, 밟고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 주었지,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착하게 솔직하게 자신의 ‘말’을 표현을 하는 법을 모른다. 오해란 기생충 알 처럼 쉽게 알을 까고 빠르게 번져나가기 시작한다. 허나 우리는 이 오해를 어떠한 방법으로 저지 시켜야 할 줄 모른다. 

3. 사람에겐 누구나 공허함과 외로움이 존재한다

꼭 나이가 많다고 그것을 느끼는 것은 아니고, 큰 상실 후가 아니라도 이러한 감정은 항상 곁에 존재한다. 10대들, 아니 10대조차 되지 않은 아주 어린 아이들 역시 그러한 외로움을 느낀다. 아마 외로움과 공허함이란 학습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니 엄마의 뱃속에서 꺼내져 처음 탯줄을 자를 때 이미 사람은 타인과 아무런 연결이 단절된 혼.자.란 개념을 태어남과 동시에 터득하고 두려움에 큰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문득, 아이들의 “아빠 나 외로워, 엄마 나 우울해” 라고 말하는 것이 그저 잔망스럽다고, 어른을 따라 한다고 웃으며 넘어갈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 아이들은 진짜로 외롭고 우울한 것이니까. 솔직히 우리의 기억 속에도 암암리 기억되듯, 그 나이에는 그 나이에 따른 고뇌가 있고 두려움이 있지 않았던가?

나는 항상 사람들과의 소통이란 것 때문에 우울해 했고, 고민해왔다. 이건 어리다고 해서 느끼지 못하고, 나이 들었다고 해서 더 심각해지거나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언제 어느 때나, 그 상황과 그 나이에는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우울함이 존재한다. 그저 그 우울함을 유발하는 주체가 주변 미성숙한 누군가 인지, 사회 속 무형의 형태인지 정도의 차이이다. 만약 그 존재가 주변에 보여지는 유형의 누군가 라면, 똑같이 백지장을 서서히 채워가고 있는 삶의 과정에 서 있기 때문에 더욱 잔인하게 느껴질 뿐이다.

영화 속 기태와 같이, 아름답지만 너무나도 연약한 어린 청춘들은 그 어느 때의 누구보다 더 단순하여 생각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빠르게 마음을 바꾸고, 금세 화해와 편가르기를 반복한다. 아이들의 따돌림과 미워하는 마음의 생성은 타당한 이유보다는 매우 사소한 것일 경우가 많고, 그 주체가 수시로 바뀐다.

 아름답지만 미성숙한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잘못인지 제대로 판가름 하지 못하고, 남을 슬프게 하는 말이 자신을 상대보다 잘났다고 증명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게 된다. 칭찬과 승리에 목숨을 걸고, 사소한 것에도 그들은 짧은 인생만큼 얕디 얕은 잣대를 흔들어 자신의 얕은 위상을 높이고자 한다. 이 시기의 그들은 피해자와 피의자의 큰 구분 없이, 이 상황의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한다.
방황하고 떠돌고 눈물로 자신의 뺨을 스스로 어루만지며 두려움에 베갯잇을 끌어 안고 “나 밖으로 나가기 싫어” 를 외칠 뿐이다. 사회의 어른들은 그저 철없는 소리라며 웃어 넘긴다. 허나 피해를 받는 미성숙한 자아는 스스로 이겨낼 힘이 없다. 그들에게 사회의 어른들은 그저 방관자일 뿐이다. 아이들은 결국 황량하고 차가운 밤을 스스로 이를 악물고 걸어가야 한다.
 
4. 이토록 진실된 표현을 가르침 받지 못한 채 황량한 밤을 걸어와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는 너무나도 외롭다.

사람이 초조하고 불안해지면 뇌가 녹아 신경을 타고 눈과 입, 손의 신경을 타고 내려오나 보다. 끈적이는 그 액체는 혀를 감아 의도하지 않은 단어를 내뱉게 하고, 손끝으로 흘러가 자신의 초조함과 불안함을 커다란 제스처로 가리고자 한다. 이 액체를 시야를 가리고, 끝내 눈 밖으로 주르륵 흘러내린다. 온 몸의 사고가 정지된다. 뇌의 지시를 받지 못한 다른 신경들은 죽어버린 듯 활동을 멈추고, 몸은 차가워지고 심장은 멈춰버린 기관들을 되살리기 위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쿵쿵쿵쿵.. 마치 숨이 멎어 심폐소생술을 받는 환자처럼, 1초가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며, 이 1초로 인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되돌릴 수 없을 것이란 너무나도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뇌를 비롯 모든 신경이 마비된 불안한 자아는 의도하지 않게 아무 말이나 내뱉게 되고, 스스로도 모르게 뱉은 말로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 이것은 거짓이 아닐지언정 올바른 진실도 아니다. 이것은 마치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보호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날짐승과 같은 표현방법이다.
결국 오해는 더욱 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연장하고, 의심이란 악몽은 어두운 밤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악몽은 우리의 몸을 꼭 껴안은 체, 파득거리는 우리의 진실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옅게 내비쳐지는 진실의 손은 이미 오해와 의심 속에 가려져 칠흑같은 밤에는 더 이상 눈앞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미안하다 말하고, 그 의심이 지속되기 전에 진실을 좀 더 표현했다면.. 폭력과 욕설, 날짐승과 같은 자기방어를 온몸에 철갑처럼 두른, 표현이란 것을 교육받지 못한 우리는 종종 이러한 상실 앞에서 뒤늦게 후회를 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깨닫는다.

 진심을 다해, 올바르게, 친절하게, 그렇게 표현했더라면.. 그리고 이 걸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이런 후회를 하지 않았을 것을. 우리는 그 누구보다 외로움에 취약하고, 본능처럼 외로움을 느껴왔기에, 이런 후회를 통해 다시 한번 세상에 고립됨을 느끼게 된다. 사회는 우리들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우리를 가르쳐 주지 않고, 지켜주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서투른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떠나 보내고 혼자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에게 오늘날의 사회는 그저 방관자일 뿐이다. 우리는 결국 스스로 황량하고 외로운 밤을 이를 악물고 걸어가야한다. 슬프게도 우리는 참 날짐승같이 스스로를 어설프게 지켜나가고 있다. 우릴 지켜주는 파수꾼의 부재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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