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고개와 편향확증

거대한 날개로 창공을 날아다니는 알바트로스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픈 보헤미안처럼 살고 싶지만 땅위를 뒤뚱거리며 현실에 허덕이는 어설픈 인간입니다. 얼마전까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실상 아이들에게 배웠습니다.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만 듭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날 수 있을꺼라 믿습니다.
BY : 전제훈 | 2012.02.28 | 덧글수(0) | 트랙백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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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스무고개를 했다. 대수롭지 않게 시작된 스무고개였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장난으로 시작한 스무고개로 나 자신은 꽤 충격을 받았다. 룰은 대충 이랬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사람 이름을 쪽지에 적어 놓는다. 당연히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 이름을 알고 있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 사람이 답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차례로 질문 하면 사람들은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준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은 한 국 사람입니까?”라고 질문하면 “아니오.”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찌어찌하다 내가 가장 먼저 문제를 풀었다. 질문을 통해 알아낸 정보는 흑인이며, 미국 사람이고, 1900년대 이후에 태어났으며, 현재는 사망했으며, 그 이름을 한 번 들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이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정치가도 사회운동가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사회적 파급력이 강한 흑인은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콤 엑스까진 아니라고 해도 킹 목사를 제외하면 도저히 내가 얻은 정보에 부합되는 인물은 없었다. 사회운동가나 사상가, 정치인을 제외하면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편향된 사고방식이 내 두뇌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고, 그 유명한 사람이 누군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답을 이야기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적어놓은 유명인은 “마이클 잭슨”이었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한 사람이 가수일 것이란 생각을 눈곱만치도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내 머릿속에서 유명한 사람이란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로 한정돼 있었던 것이다.

 편향확증(Confirmation-Bias):자신의 믿음이나 신념에 유리한 정보에는 지나치게 관대하고, 그와 반대되는 정보에는 지나치게 적대적이거나 인색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지상정이 단순한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나 신념에 유리한 정보를 의도적으로 구해 기존의 인식을 더욱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믿음이나 신념에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경시함으로써 인식의 수정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본문16쪽/지식프라임/EBS지식프라임 제작팀

 루터 킹 목사라는 편향확증의 진실이 마이클 잭슨이라니. 항상 나 자신은 결코 한 쪽에 휩쓸린 사고방식과 거리가 멀고, 일방적인 판단이나 주장에 앞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남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나 또한 편향확증에 늪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사실이나 진실, 상식에 대한 편향된 내 사고의 부끄러운 일면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나 자신도 내가 선호하는 방향의 정보만 취합하여 편향된 내 인식을 비대하게 키웠을 뿐 그 반대의 정보나 내 취향에 동떨어진 내용은 쉽게 잊어버리고 마는 바보였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정보에 관심을 크게 갖는다. 또 논리적 이성이나 판단보다 감성적인 휩쓸림에 훨씬 쉽게 우리를 노출시킨다. 자극적인 기사 한 줄, 선정적인 영상 한 컷에 우린 너무 단순하게 반응한다. 앞뒤 맥락은 사라지고, 이성적 판단은 감정적 선동에 매몰된다. 게다가 편향확증으로 인해 스스로의 판단과 사고에 오류가 발견된다 하더라도 우린 인지부조화라는 가면을 쓰고 절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과학기술의 진보를 통한 인류의 번영이라는 편향확정에 빠져있다. 불안한 미래와 불확실한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은 편향된 사고 시스템에서 꾸준히 배제된다. 지속가능한 삶,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삶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알고 싶은 것만 골라서 취하는 지적 게으름에 누구든 자유롭지 못하다.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끌어가야 할 정치권은 이미 오래전 집단적 편향확증에 빠진지 오래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혈연을 통한 집단 이기주의의 견고한 편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공고해진다. 세상이란 것이 과거의 경험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절대 아님을 깨달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린 머릿속 사고마저도 편안함을 추구한다.

 정보에 대한 접근과 수집이 편리한 세상이지만 그것과 비례해 사고의 편향성도 증대되고 있다. 원하는 정보만 얻을 수 있는 구조로 미디어와 검색엔진이 왜곡된 진화를 거듭하는 동안 대중도 편향된 사고방식을 쉽게 수용하고, 이는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킨다. 내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짧은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는다면 편향된 사고에서 꽤 자유로울 수 있다. 나와 반대의 의견일지라도 상대가 옳을 수 있다는 확장된 이해심이 갈등과 대립을 완화시킬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 다는 것에 대한 작은 의심이 편향확정의 늪에서 스스로를 건져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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