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과 성희롱 사이

여행과 섹스.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서른한 번째 여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twitter:@babamba11
BY : 김얀 | 2012.02.09 | 덧글수(17) | 트랙백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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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얀의 색, 계]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유쾌한 야한 농담이고, 불쾌한 성희롱이 될까? 오늘은 이것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

 장소는 대구광역시 대학로의 어느 막창 집.

 당시 나는 01학번 신입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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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막창 집에는 나와 같은 반 여학생 2명과 우리 과 남자 선배 3명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내 맞은편의 여학생 두 명 중 한 명은 마른 몸매의 소유자였고 그 옆에는 조금 뚱뚱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바로 여자의 몸무게와 가슴크기의 비례관계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웬만한 이변이 없는 이상 여자의 몸무게와 가슴크기는 정비례한다. 그러므로 역시나 내 앞의 마른 여자는 가슴도 말랐고, 조금 뚱뚱한 여자의 가슴은 조금 뚱뚱했다. 아니, 그런데 이 여자는 가슴이 아주 뚱뚱했다. 더욱이 그때는 초여름이었으니 얇은 티셔츠 때문에 둘의 크기와 부피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나는 그래서 그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 선배였다. 이 선배의 별명은 야농왕이었는데, 야한 농담의 왕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사실 그날이 이 선배와의 처음 술자리였는데, 그전부터 이 선배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농왕은 술이 점점 들어가자, 야한 농담에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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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자취방에 세탁기 없는 애들은 오빠 집에 빨래하러 와. 대신 속옷은 이 오빠가 직접 손빨래해주마. 하하하” 라고 시작한 야농에 주변 오빠들도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솔직히 나도 좀 웃었다. 짓궂긴 했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그 자리에서는 조금 참고 있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도 야농퀸이었다.

 

 적당한 야한 농담은 말 그대로 유머다. 딱딱한 자리를 웃음으로 풀 수 있고, 그만큼 서로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농왕은 이쯤에서 만족하지 않고, 이내 하나의 표적을 정하고 야농의 깊이를 더 했다. 그의 표적은 바로 맞은편의 대비를 이루고 앉아 있던 여자 둘이 그것이었다.

 ”에이, 근데 둘이 있으니깐 너무 차이가 난다. 하하하”

 콕 집어 가슴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가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일단 그녀들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것에 다시 감사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앞의 두 명의 여자도 그냥 슬쩍 웃으며 넘겼는데,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다 보니 야농의 수위가 아슬아슬해지다가 결국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겨버렸다. 때마침 구워진 막창을 적절한 시간에 뒤집지 못해 타는 연기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피어오른다.

 ”야야, 너 지금 목 돌아간 거지? 등인지 가슴인지 모르겠다, 야. 근데 옆에 너는 지금 머리가 세 개야. 지금! 촤하하하하”

 야농왕은 마치 천주교를 박해하고 민심을 살피지 않는 조선의 순조처럼 그녀들의 표정을 무시하고는 계속 그런 식의 야농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자리의 다른 남자 선배들도 마치 잘못된 세도정권, 안동 김씨 세력들처럼 야농왕의 옆에서 손뼉을 치고 웃으며 왕의 나쁜 행실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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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앞의 두 여자는 불쾌감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었다.  농담의 사전적인 의미가 [실없이 장난으로 하는 말] 이라고 해도, 남의 콤플렉스를 계속 건드리는 건 옳지 않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장난의 선을 넘어 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선배였고 우리는 후배였다. 뭔가 공평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나도 괜히 불쾌해졌다.

 

 당시 나는 선배들과의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되도록 얌전을 빼고 앉아만 있었는데, 껄껄거리며 웃는 선배들의 표정을 보니 도저히 참고 있지만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치, 못살겠다. 홍경래처럼 그 자리를 뒤집어엎기로 결심했다.

 먼저 시선은 내 옆 야농왕의 허리띠 아래 5센티미터 지점에 두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참, 나. 듣자, 듣자 하니깐 정말…… 그러면 그러는 선배는 커요?”

 순간 당황한 선배의 얼굴. 그 옆의 간신배1은 마시고 있던 콜라를 뿜었다. 나는 주변의 분위기에 동요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풋고추 하나를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다시 물었다.

 ”아니, 뭐, 그러는 선배는 꼬추 크냐고요? 보면 꼭 작은놈들이 여자 가슴 크기에 집착하더라.”

 내 옆의 야농왕은 생각지도 못한 나의 시간차 공격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테이블에 뿜어낸 콜라를 닦아내던 간신배1은 뭐 이런 애가 다 있느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야농왕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내 물음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내 앞의 두 여자도 약간 놀란 듯하다가 이내 조용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후, 몇 분이 더 흐른 뒤, 이 술자리는 야농왕의 급격한 컨디션 난조로 금방 끝이 났다. 뭐, 대답을 듣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내 앞에 있던 두 명의 여자에게 진짜 통쾌했다- 라는 말을 들었다. 너 정말 대단하다는 말도 했고, 앞으로 자주 같이 술을 먹자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뒤, 나와 두 여자는 제법 친하게 지냈지만, 그때 그 막창 집 멤버들이 모여 술을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야농왕과 간신배들은 그 뒤로 다시는 나를 그들의 술자리에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야농왕은 그 뒤로 학교에서 나만 보면 눈을 피했다. 간신배 일당은 ‘1학년에 김얀이라는 지독한 여자아이가 있다.’라는 소문을 낸 것도 같았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다시는 그들의 술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다.

 당시에는 ‘저 오빠들이 속 좁게 왜 이러나?’ 라고 생각도 하고, ‘신입생이 선배한테 너무 했나?’ 싶기도 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아! 나도 야동왕의 콤플렉스를 건드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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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렇다면 얼른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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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농왕선배.

 제가 그때 선배의 콤플렉스를 건드렸던 것이라면 정말 미안합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연락 주세요. 우리 다시 그 대학로 막창 집에 앉아 적절한 수위를 지키는 야한 농담으로 그때의 기억을 지워봅시다. (메일 주세요 - kimyann@hanmail.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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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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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얀 (@babamba11)

일러스트, 코베(@kov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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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dy3mm 2012/02/09 13:14

불현듯 대구막창골목의 추억이. 센스있게 받아치지 못 한 야농왕선배를 기리며. 아쉽스므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나저나 막판 메일센스 쩐다…

ziyaa09 2012/02/09 13:28

아..진짜 김얀작가님의 글 센스는 ㅋㅋㅋ
마무리부분에 사과와화해의 글을 씀과 동시에
삽화에서 오는 다시 장난스런 작은 복수도 ㅋ
너무너무 재밌어요
두주는 넘 긴거 같아요ㅠㅠ
기다리기 힘들어요
한주에 한번씩은 업뎃할 수없나요??

lor5947 2012/02/09 14:42

역시 우리 김얀이의 센스!

youheeyeol 2012/02/09 16:33

야농왕은 이현우였군요 촤하하하하하~
야농왕 선배도 그러네 크냐고 물어보면 “그래 작다 너무 작아서 쥐똥고추 만큼 맵다 흥!” 이라고 왜 말을 못 해~ 그런데 말이죠 꼭 작다고 큰 가슴을 좋아하거나 그러진 않아요…(발기레~)

deje 2012/02/09 18:06

제가 최근에 들어본 강한 야농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친구 중에 트랜스젠더인 녀석, 아니 년이 있슴둥.
어느 날 얘가 모는 차에 패션디자이너 한 놈이 타게 되었구요.
근데 차 안에 핑크색 털시트가 깔려있었거든요.

패디왈: 너 요즘 하도 못해서 밑에 고드름 맺히니? 이 왠 털들?

alfmqhd35 2012/02/10 11:28

하긴..저라도 기분 나쁜 야농을 들었을때 암말도 못하고, 그냥 기분나쁜 표정으로만 그 상황을 모면했을껏 같요..(소심해서..) 김얀씨처럼 적절할 때 한방 먹여주는 센스..저도 닮고 싶네요..^^ 재치 있어요~
콜라를 뿜은 간신배1처럼 나도 한번 속시원하게 뿜고 싶네요~~푸하하하!!

yhshin 2012/02/10 16:29

절대로 그 경계는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적인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는 그런 농담 하지 않는게 상책입니다.
나꼼수 비키니사건도 “내가 기분 나쁘다”하면 나쁜겁니다.
왜 나쁜지, 어떻게 그게 기분나쁠 수 있는지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기분 나쁜 사람이 있으면 안되는거고, 성희롱을 한게 되니까요.

akrntrks99 2012/02/10 16:39

작가님 여자분 맞아요 ㅎㅎㅎ 너무 솔직하고 재미가 있읍니다 잘 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건필 하세요

lunarlena99 2012/02/10 18:51

어릴땐 야농에 발끈하고 선배들이 짐승처럼만 보였는데 지금은 맞받아친다는..
여전히 남자들은 여자들앞에서 야농을 즐기고 싶어 하나봐요
최근에 회식자리에서 새로 집을 구하는 나에게
“우리집에 들어와 돈안받을게 대신 방은 하나야”
“그건 제가 서비스하는거죠, 돈 준비하세요”

이래야 웃으며 훈훈한 마무리를 할수있다는..
뭐.. 꼭 나쁘게만 볼필요는 없지만 상대방이 기분나쁘다면 그건 농담이 아닌거죠 ㅎㅎ

tmdfmqhd 2012/02/11 15:26

뭐든 적당히 해야겠지요 ㅎㅎㅎ 그런데 항상 적당히가 어렵죠 특히나 술이 들어간다면.. 고로 술도 적당히 .. 유쾌하게 잘 봤습니다.. *^^*

parkgabri 2012/02/12 20:25

마누라한테 가슴도 없으면서 브레지어는 지성스럽게 입는다라고 야한 농담을 했더니 마누라가 말했습니다 ” 내가 당신 팬티입는거 보고 뭐라고하든?” …………….남자분들 말 조심 합시다.. 개망신 당했어요…흑흑.. ㅠㅠ

jjodaya123 2012/02/13 03:10

멋잇으세요!
남자분들은 여자분들이 가슴에대해 너무쉽게 꺼리낌없이 얘기하는 경향이 있죠
김얀님의 글을보니 속이시원한듯하네요.. ^.~
대구막창이 너무땡기는 밤입니다… 다음글 기대할께요 ㅋㅋㅋㅋㅋㅋ

yellowapple 2012/03/06 16:41

누구나 주변에 꼭 한명쯤은 있을법한 야농왕선배 .ㅋㅋ

김얀작가님 글 너무 재밌네요~

저도 진즉 이렇게 하라고 알려주는 여자선배 있었다면
어색한 웃음만 날리는 후배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예요~

loveapple27 2012/03/06 16:56

여자로 살면서 가슴이든 다른 부위던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들어본적이 없는 여자는
아마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럴때 김얀님처럼 통쾌하게 한방 먹이는 방법.. 잘 배우고 갑니다 ㅋㅋ

flopigmiz8319 2012/03/25 11:05

저도 불현듯 대학시절 야농이 생각납니다. 코도크다 금상첨화, 코만크다 표리부동, 코만작다 외유내강, 코도작다 설상가상 이렇게 남자들에 대항하며 기를죽였죠. 그래서 우린 여자로 취급받지 못했지만… 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한번 당당히 투쟁하고픈 결기가… 호호 잘 읽었어요. 힘내세요.

sloveg21 2012/03/31 21:38

사실 슴가나 거기나 엄청난 사이즈를 바라는건 아닌데 말이죠 왜 이렇게 사이즈가 민감하고 말썽인지 ㅎ
제 생각에는 꼭 컴플렉스를 건드려서 그런건 아닌것 같습니다. 작가님처럼 당돌한(?) 여성분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서 큰 충격을 받은듯 ㅎ 여기서 사이즈와 기질에 관한 잘못된 편견을 심어주면 안됩니다 흐흐

fmaru 2012/04/13 17:04

생긴 것갖고 뭐라하는 것이 나쁜 것이죠.이런 식은 어때요? 가슴이 작아보이는 분에게 뭐라고 농을 해야한다면 기민해보인다.지적이다 풍만한 분에게는 푸근함을 준다 정도로 할 말은 다하면서 기분좋게해주는 ….그래야 농담이죠.들은 사람이 거부감을 보인다면 같이 앉아 술을 먹을 기분이 아닌 적대적인 상태인데…


  • 오피니언 필진소개

    조윤호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인문학 전반에도 관심을 기울이려 애쓰고 있다. 급진적 정치기획에 관심이 많으며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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