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없는 가슴 소비

예술사회학. 현재 프랑스에서 박사과정 중 http://blog.daum.net/jayuin666 트위터 @gaLaYoung
BY : 이라영 | 2012.02.02 | 덧글수(20) | 트랙백수 (4)
프린트하기 이메일보내기 미투데이 트위터 잇글링

1
성관계를 이르는 비속어 중에는 남성이 여성의 성을 ‘먹다’ ‘따먹다’ 라는 표현이 있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에게 ‘주다’ ‘대주다’라는 말도 있다. 이 언어들의 공통점은 여성의 성이 남성에게 ‘주는 것’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성이란 것이 상호 소통하는 관계가 아니라 한 쪽이 먹고 한 쪽이 주는 관계라면 결코 대등해질 수 없으며 결국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인류는 단지 그 지배에 대한 포장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바꿔왔을 뿐이지 여전히 제1의 성인 남성은 제 2의 성인 여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한다. 세계적인 미인대회는 여러 개 있으나 미남대회는 없다. 프랑스에서 최초의 여성 대학생과 여성 변호사가 탄생할 때 이들을 담은 캐리커쳐는 다분히 ‘성적’으로 묘사되곤 했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도 남자나 여자나 ‘여성’에게 더 시선을 많이 준다. 여성성은 타자다. 그래서 여성의 성을 ‘먹는’, 즉 소비하는 대상으로 보는 시각은 어디서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그렇기에 권력에 도취한 ‘도지사 김문수’에게는 <춘향전>도 그저 “춘향이 따먹는” 이야기가 되며, 취미가 고소인 화성에서 온 국회의원은 특정 직업군을 향해 “다 줄 각오”해야 한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가면 빤스 벗어야 내 신도라고 말하는 일명 ‘빤스목사’도 이런 의식이 괴물처럼 부풀어서 탄생한 인물이다. 궁극적으로 이들은 여성의 성이란 남성을 위해 ‘주는’ 존재이며 남성은 그 성을 ‘취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서로 잘 통한다.

그런데 여성과 남성의 성적 구도에 대한 편협한 인식은 단지 빤스 목사와 일부 한나라당 정치인들만의 문제일까. 이것은 정치적 좌우정렬과 반드시 일치하는 사안이 아니다. 남녀의 성이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사회에 정착한 지 너무도 오래 되어서 그 사고의 얼룩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교양 있는’ 남성들 중에는 마치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범죄자나 마초처럼 여겨지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이 또한 이해한다. 자기도 마초가 아니고, 그의 아버지도 마초가 아닌데 ‘남자들’ 혹은 ‘아저씨들’ 더 자세히는 ‘중년 남자들’이라는 일반화를 통해 모두 한 통속으로 몰지 말아라, 하고 분명히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개개인의 마초성을 따지거나 문제를 남자 탓이다 여자 탓이다 라고 선을 긋고 분쟁을 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게다가 이미 우리는 ‘남성성’으로 견고하게 지어진 사회 속에 있기에 대부분이 둔감하다. 생물학적 여성 중에도 마초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가 있고 생물학적 남성 중에도 마초에 치를 떠는 경우가 있다. 즉 이것은 ‘사회적 성’의 문제다. 

정치적으로 진보라고 해도 가부장적인 남성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진보라고 하지만 여성성이 객체로 머무는 것에는 크게 저항하지 않는 여성도 있다. 그래서 똑같이 시위 현장에 있다가 집에 들어왔는데 여자가 차리는 밥상을 자연스럽게 받아 먹는 남자가 있고, 시선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몸을 ‘섹시하게’ 드러내어 신체자본을 잘 활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여자도 있다. 정치적 진보와 여성성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상당히 분열적이다.

2
그런데 지지자들에게 수감 생활 중 성욕감퇴를 우려하며 여성수영복 사진을 운운하는 (물론 전적으로 농담으로 시작된) 자칭 ‘진보’가 있다면 이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고 실제로 비키니 사진을 찍어서 ‘시위’의 방식이라고 전한 여성이 있다면 그 태도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들 사이에 형성된 아무런 권력 관계가 없기에 어떠한 강요나 불쾌한 감정 없이 이 모든 것은 자발적으로 벌어졌다. 그렇다면 ‘권력 없는 농담’과 ‘자발적 대응’이라는 말로 이것이 애초부터 ‘아무 문제없는’ 것인 양 정리해도 될까. 얼핏 보기에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쩐지 그것도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수영복 사진’이라는 것이 가지는 ‘심상心像’이 있다. 게다가 그 말을 뱉은 사람이 ‘남성’이고 ‘성욕감퇴’라는 언어와 꼬리를 물고 등장한 ‘수영복’이라는 상징은 충분히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의 차원으로 펼쳐질 수 있다. 그렇기에 아무리 ‘자발적으로’ 비키니 사진을 찍어 올렸다 해도 과연 그 ‘자발적’의 차원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여성이 스스로 여성의 몸을 도구로 삼고 그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할 때 이는 결국 ‘자발적 객체화’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자발적 객체는 과연 주체적인가.

‘옷을 벗은’ 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것은 자유다. 또한 아무도 그 행위 자체를 비난할 수도 없다. 문제는 그것을 정치적 발언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들의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발언에 대항하기 위해 야한 옷차림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몸을 도구화한 것이 아니라 ‘몸’, 그 자체에 메시지를 입힌 것이다.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을 당연시하는 통념에 대한 저항이다. 하지만 아무리 농담으로 설정되었다 해도 남성 정치인의 ‘성욕감퇴’라는 화두에 응하는 방법으로 등장한 비키니는 여전히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각 안에 머물러있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줄 수 있다. 물론 백 번 양보해서 이것도 ‘유쾌한 장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유쾌한 장단을 과연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자. 본격적인 문제는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펼쳐진다.

“비키니 응원 사진 대박, 코피 조심”이라는 깜짝 놀랄 문구를 작성하고 그것이 문제의 소지가 될 것이라는 인식조차 없는 감수성으로 기자가 직접 그것을 트윗에 올렸다면 이것은 더 이상 유쾌한 지점을 벗어날 수 밖에 없다. 코피 쏟을 정도로 강력한 성적 대상으로 한 여성의 가슴을 소비한 시선을 공개하고도 어떠한 변명도 해명도 없다. 여성의 가슴은 좋아해도 진짜 여성을 이해하는 가슴은 부족한 것 같다. 역사가 남성의 역사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이 없는 무지를 바탕으로 젊은 여성들이 나꼼수를 통해 정치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발언을 자랑스럽게 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돼지’라는 표현으로 신체를 비하하는 언어도 무감각하게 오고 갈 수 있는 정서이니 이미 ‘성적 대상’인 여성의 몸을 두고 ‘코피’ 걱정을 드러내는 저 날 것의 언어들도 뭐가 그리 놀라울까. 다만 남성성의 사회를 의심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고민이 결핍된 비인본주의적 태도가 안타깝다.

나는 개개인을 규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왜냐면 이것은 그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처럼 집단의 둔한 감수성, 그것의 한 귀퉁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성성’에 대한 무지함은 좌우를 막론하고 아주 평화롭게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게다가 그까짓 여성성을 좀 진지하게 인식해주지 못한 죄 정도야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서 얼마든지 덮어줄 수 있다는 태도, 솔직히 공포스럽다. 누구를 위한 대의인가. 수년 전 민노총 간부가 여성 조합원을 성추행 했던 일처럼 굳이 범죄화된 사건까지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입으로는 진보를 논하고 룸쌀롱에서 질퍽하게 놀거나 몸에 익은 일상적 성희롱 혹은 성희롱의 일상화는 꾸준히 진행 중이다. 아직도 술 한잔 따르도록 하는 사람도 있고 여성은 조직 내에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꽃처럼 존재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더욱 난해한 정서란 오히려 기존에 소비되는 방식인 객체가 된 성으로서 벗을 때는 아름답고 충돌 없이 사회에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관용을 가지고 ‘표현의 자유’니 ‘다양성’이니 하는 언어를 베풀지만 정작 메시지가 있는 ‘벗는 행위’, 즉 주체가 된 성은 불편하게 여긴다. 그것은 그저 피곤한 여성주의자의 발악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결국 인본주의를 향하는 것이다. 여성성을 고민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쪽 성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이 기울어진 역사 속에서 ‘인간’을 고민하는 일이다. 풍성한 가슴 좋아하는 사회이지만 정작 진짜 가슴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 A컵 가슴의 gala

프린트하기 이메일보내기 미투데이 트위터 잇글링
덧글수(20) | 트랙백수(4) | 트랙백주소 http://hook.hani.co.kr/archives/38618/trackback

[주소복사]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

maha9632 2012/02/02 13:47

라영언니는 이대 여성학 조교정도가 종착역이 되겠구만
진보라는게 뭔데?나는 개인이 자유롭고 행복한게 진보라고 봐요
왜 개인이 시대상황봐가면서 자신을 억압해야 하는지,
서로 통하는 개인끼리의
성희롱이 아니라 성적농담이나 표현조차도 시대 사회 집단을 고려해야 하는지
라영씨는 지금 한국에 빈민이 자살하고 노동자 여성들이 지옥속을 헤매는데
프랑스에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개인의 공부 영달도 좋지만
학비가 없어 몸을 파느 한국여대생들들이 수십만이라는데 안락하게 유학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해봤는지. 유럽유학정도는 갔다와야 지식인 대열에 끼는
한국사회에 대해 분노는 해봤는지/
왜 라영언니 꼴리는데로 진보틀을 규정하고 개탄하는지 알수가 없네
이젠 한국페미니즘도 이젠 좀 달라져야된다고 봐여 요즘 젊은 여성들은 라영씨같은
구시대적 폐미니즘은 수꼴과 동급으로 봐여
사회는 변하고 가치관도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이땅의 진보들은
아니 먹물꼴통진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대중과 괴리됨을 훈장처럼 여기고 자위하고 있으니

    oljn1106 2012/02/02 14:35

    개인이 자유롭고 행복한게 진보.. 맞죠 맞습니다 그런데요 남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면서 남에게 아픔을 주면서 자기들끼리 통한다고 좋아하는건요 그건 방종이잖아요 자유가 아니라 막 싸지르기만 하는거잖아요 저는 저 사진 보면서 이상하게 아팠어요. 후련하고 참 잘한다가 아니라 이상하게 불편하고 이상하게 씁쓸했어요. 이게 뭘까 알 수가 없어요 저도. 여자들은요. 겉으로는 쿨하고 아닌 척 하지만 성에 대해서 누구한테도 말 못할 슬픔 같은게 있어요. 우리 엄마 세대 할머니 세대 그 할머니의 할머니 세대부터 내려온 그런거요…
    안락하게 프랑스가서 유학이나 하고 있다는 댓글들 그래서 너가 한국 상황에 대해 뭘 아냐는 댓글들 이 글말고 이분 다른 글에서도 참 많이 봤는데요. 알아요 요즘 너도나도 다 힘들다는거 죽지 못해 산다는거 답답하고 울분에 찼는데 어디다 토해내야 되는질 알지 못해서 미쳐가고 있다는거 도대체 어디부터가 잘못된건지 몰라서 너무 슬프다는거 근데 그러지 말아요 우리. 현실을 똑바로 봐요. 저 언니가 프랑스가서 우리가 이렇게 된게 아니에요 빈민이 자살하고 노동자 여성들이 지옥을 헤메는 건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다 그렇게 되도록 조금씩은 동조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에요. 내가, 나부터가, 동네 빵집 대신 크고 화려한데 찾아가서 빵 사갖고 돌아오고, 과시욕으로 점철된 식당가서 우아하게 사진 찍고 돌아오고, 누구는 크레인 올라가서 노동자 권리 온 몸으로 부딪히며 외칠 때 뭘 위법하면서까지 시위를 해쌌냐고 사람들이 비난할 때 따뜻한 댓글 한번 남기지 못하고… 집에서는 엄마 아빠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드리지 못하고 ….. 그런거잖아요. 살아간다는건 이렇게 어처구니 없고 흐릿하고 비릿한 것들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우리 분노의 방향을 엉뚱한데로 돌리지 말아요. 정직하게, 현실을 봐요.

    soulcrew 2012/02/03 10:38

    oljn1106 님 님께서 마음한구석 불편하게 여기는게 지금까지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피해의식이 표출되서 그런게 아닐까요?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지금까지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억압이 대상이 되왔고 지금도 사회분위기가 그렇다는것에 동의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번 나꼼수발언(비키니 사건 이라고 쓰고 싶지 않네요)이 대한민국 언론전체가 조리돌림 해야 하는것은 좀 의아합니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집회나가서 구호외치고 가두행진하다가 내옆에 있는 여성시위자가 김태희얼굴에 글래머러스한 몸매의 소유자라고 라고 한다면 FTA를 반대구호도 외치고 꼴릿한 감정이 드는것도 어쩔수 없는게 대다수 남자라는 동물이 갖는 본성이라는것이다. 꼴릿, 대박, 슴가라는 글을 쓰지 않아도 그런건 그런거라는 말입니다. 꼴릿할수 있는 메시지를 던졌는데 가슴은 보지말고 정봉주 무죄라는 메시지만 봐달라 강요하는것도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남자와 여자로서가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진우의 좆까, 김어준의 B컵을 웃음의 소재로서 보는거처럼 말이죠.

    dragon3927 2012/02/03 12:44

    한 10년 됐을 겁니다. 미국 페미니스트 협회에서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에 ‘마돈나’가 선정되었죠.. 그 이유는 여성성을 여성권력과 힘을 높이는 데 가장 잘 이용한 사람이다 라는 거더군요.

    성평등은 성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 생각합니다. 여성성을 수동적인 존재, 여성의 피해의식은 어찌보면 여성 스스로가 만든 자격지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있게 아름다운 몸을 보인 스스로의 자발성에 대해서도 그 사진을 보면서 “코피조심”이라 농을 한 한 남자의 자율성에 대해서도 비난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있게 자신의 생각을 던질 수 있는 것, 행동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보가 무수히 주장하는 이른바 ‘인간의 평등’의 첫단추가 아닐런지요?
    대중의 반응이 두려워 움츠려 들어 행동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SNS 검열’ 등 보수의 규제 정책이 추구하는 본질과 다른점이 무엇인지요?

add3328 2012/02/02 22:5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A컴 가슴의 gala”는 ‘성의 객체화를 비꼬는’ 반어법인가요 아니면 나도 모르게 글 속에서 역설하신 테제를 단번에 부정하는 반전인가요? 전 주진우 기자의 문제가 됐던 트윗도 그런 차원으로 해석합니다. 트윗이 아니고 시사인 기사였다면 그렇게 표현 안 했겠지요. 이라영님께서도 메체의 특성을 감안해서 위의 표현을 쓰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종의 ‘위악코드’ 아닐까 하는데요, 위선이 선이 아니듯 주기자도 비키니 사진이나 보면서 코피나 흘리는 변태가 아니고 라영님 역시 성의 객체화를 동의했다고 보면 안 되겠지요.
곧 두돌이 되는 딸이 있는데, 너무도 예쁜 나머지 볼을 살살 꼬집으며 “요 지지배”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 종종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이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남성이고 그러다 보니 “감수성이 둔감”하고 “여성을 이해하는 가슴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구요.

라영님의 글을 읽으면서 고개가 끄덕여지긴 해도 왜 와닿진 않는 것일까요?
우선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라영 2012/02/02 23:44

    안녕하세요.
    트윗으로 메세지 남기셔서 관련 내용은 트윗으로 답 드렸습니다.

anyboyz 2012/02/02 23:50

권력이란 대상을 움직일 수 있는 영향력이라고 정의한다면
나꼼수와 지지자들의 관계는 이미 권력관계에 처해 있습니당.
그리고 나꼼수와 이 세력을 반대하는 집단 사이에도 권력관계에 있습니당.
나꼼수 권력의 성격은 인기입니당.
물리적인 권력도 있지만, 정신적인 권력도 있을 것 같아용.
.
어떤 권력이더라도 남용 또는 잘못 사용될 수 있습니당.
따라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과 저항의 항시적 필요성이 생깁니당.
.
남성이 여성의 성을 ‘먹다’ ‘따먹다’란 표현에는
남자가 여자의 성을 빼앗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당.
남자가 여자의 성을 억지로 제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죠.
여성이 남성에게 ‘주다’ ‘대주다’라는 말은
남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자가 남자한테 자신의 성을 바친다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아용.
이것은 성결합의 권력관계가 언어의 혈관 속에 피처럼 흐르고 있는 셈이죠.
.
인간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당.
다시 말해 만인은 각기 목적이고
목적인 한에서만 동등하므로 서로 수단이 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당.
이것이 평등과 자유와 휴머니즘으로 가는 기본 전제입니당.
.
비키니 사진에 나온 여성의 상상력은 멋졌습니당.
그런데 그것이 감옥에 있는 성욕감퇴자를 위한 나꼼수 지도부가 요구한
사진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용.
그 여성이 나꼼수의 시각적 위안부가 아니잖아용?

    vinzik 2012/02/03 12:00

    한국에서 요즈음 권력은 얼마나 관심을 받느냐로 판단되는 것 같습니다. 소위 인기가 대박을 쳐야 하는 것이지요. 이걸 기준으로 보면, 확실히 맞습니다. 나꼼수 권력의 성격은 인기입니다. 그리고 나꼼수나 지지자들이나 양쪽 모두 그 영향력과 인기를 과대평가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요. 선거 때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기다려봅시다.

    위에서 말씀하신 대로, 생물학적, 사회적 성차와 성정체성에 권력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것도 동의하고, 일상 언어와 대화의 수준에서 그러한 권력관계가 매일 매순간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다만, 그러한 권력관계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추상적인 인본주의나 휴머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은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물론, 성차와 성정체성보다는 인격적인 관계맺음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개별적인 주체들이 자기 몸을 객체화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인정을 원하거나 권력을 추구하는 경우, 몸/마음/인격/사람을 도구화하면 안 된다는 정도의 인본주의/휴머니즘만 가지고 그러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권력 추구 행위의 의미를 규정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저도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정작 문제가 된 것은 나꼼수에서 그 사진을 돌린 행위에 대하여 이루어진 사후적인 평가(의미 부여 및 해석)라는 것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원래 글을 쓰신 분의 의도였던 것 같습니다.

    tro1940 2012/02/05 03:08

    ‘시각적 위안부’라는 표현에 감짝 놀랐습니다. 당신이 비난하는 나꼼수만큼이나 선정적인 언어폭력을 사용하시는군요. 비키니 시위를 한 여성이 옆에서 당신의 표현을 들었다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성의 이해를 대변하는 듯 하지만, 당신의 사용하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것은 소위 ‘대문자 여성’ 또는 여성 일반을 위해서, 한 여성을 심지어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용하는, 그런 점에서 나꼼수와 다름 없는 모습이네요. 나꼼수만큼이나 당신도 그 여성을 자신의 여성주의적 이념을 위해서 대상화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anyboyz 2012/02/05 13:52

    일제시대 종군위안부가 발생한 일은
    나꼼수의 비키니 사진이 던지는 의미와 유사한 논리에서 진행된 것입니당.
    그래서 본질적으로 시각적 위안부로 보이던데용.
    여성을 여성성으로 보기 이전에 인간으로 먼저 봐야 합니당.
    .
    (아래는 joyful31님의 의견)
    저는 (이번 비키니 사건을 보며)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끌려가
    군인을 상대로한 위안부 노릇을 강요받았던 인간이하의 경험을 한 할머니들을
    자꾸 떠올리게 됩니다.
    .
    서울대학교 이용훈 교수와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이 할머니들(당시 10대~20대의 젊은 여성들)중에 매춘을 통해 돈벌려고
    자발적으로 온 매춘여성들이 일부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 의해 저질러진
    이 비인간적인 만행을 은폐하고 그 본질을 왜곡하려 들었습니다.
    .
    자발적으로 갔건 끌려갔건,
    그 종군위안부 여성들은 남성의 성욕이 요구하는 성욕의 해결도구,
    물건으로 간주되어 강제로 혹은 돈이라는 미끼를 통해
    성욕해결의 수단으로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tro1940 2012/02/05 14:27

    답변을 보니 말실수가 아니군요. ‘시각적 위안부로 보이던데’ 한국어에 어색한 수동형을 쓰면서 모호하게 만들지 마세요. 도데체 누가 그렇게 본다는 말입니까? 혹시 당신 아닙니까? 당신 스스로 비키니 시위 여성을 주체적인 한 인간이 아니라 ‘시각적 위안부’로 보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한 여성의 주체적 행위를 시각적 위안부로 만드는 당신의 시선은 누구의 시선입니까? 그 시선은 여성 모두를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왜곡된 여성주의의 시선 아닙니까? 나꼼수의 발언 만큼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폭력성에도 성찰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꼼수의 발언을 종군위안부와 관련시키는 것은 선정적이기는 하지만 설득력은 없습니다.) 그런 논리를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설득력 있게 비판할 수 있습니다. 차이에 대한 인정과 공감은 여성주의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anyboyz 2012/02/05 15:01

    asadal99님 / 억울하게 감옥간 정봉주를 위하는 일이라면
    여성의 몸을 동원해도 괜찬다거나
    성차별적인 언행을 해도 용서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이,
    일본 제국주의자놈들이 처녀들을 동원해서
    군위안부 성노예로 부려먹던 개같은 논리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아주 위험한 파시즘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네요.
    정신 좀 차리시길.
    (한겨레신문 joyful31님의 댓글에서)

    anyboyz 2012/02/05 15:04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볼 생각이 없는 마초 분들이 한심하고 불쾌할 따름입니다.
    여성은 몸으로 얼굴로 말해야한다는 이런 마초문화는
    TV의 각종 연예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확대 강화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끼칠 영향도 생각해야지요.
    여성에 대한 성상품화, 성의 대상화를 강화한 이번 김용민 주진우의 발언은
    반드시 사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신문 joyful31님의 댓글에서)

bkrang 2012/02/03 13:56

잘못했다고 말하고 지적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앞으로 바로잡아 가면 될 일인 것 같은데 좀 답답한 분들입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차차 해야지요.

hwa1203 2012/02/05 00:32

웃음밖에 안나오네요. 한 여성이 자발적으로 한 행동이고, 나꼼수측이나 기자 등… 누구도 그 여성의 인격을 비하한 적이 없는데, 단지 자신의 피해의식을 고집스럽게 투영하여 가해자, 피해자 관계를 억지 설정하시는군요. ‘비키니 가슴이 대박이라 코피 쏟겠다’는 건, 사진 속 여성의 섹스어필에 대한 응답으로 자기 성적흥분을 표현한 것이고, ‘따먹는다’는 상대방 의지나 행동과는 상관없는 강제적인 의도를 표현한 말입니다. 님의 논리적 오류는 이 두가지를 전혀 구분없이 ‘성적대상화’라는 말로 뭉뚱그려서 부정하는데에서 시작하는데, 성적대상화라는 것도 전혀 정신이 배제될 수는 없는 관념이고,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슬럿워크에서의 투쟁적인 모습은 주체적인 벗는 행위이고, 지지하는 정치인의 요구에 대한 화답으로 비키니 응원을 하는 것은 여성성의 파괴라는 자신의 멋대로 구분을 주장하면서 인본주의까지 들먹이는 님은 가히 파시스트라고 할만 하군요.

dhtnals7878 2012/02/05 03:39

“성관계를 이르는 비속어 중에는 남성이 여성의 성을 ‘먹다’ ‘따먹다’ 라는 표현이 있다.” 기사 중 이런 부분이 있네요. 그런데 저 여자는 단지 시위를 하기 위해서 사진을 올렸을 뿐이고, 비키니를 입었을 뿐입니다. 물론, 성에 대한 생각이 드는것이 사실이긴 하다만은,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억지 끼워맞추기 설정은 너무했네요. 그것을 또 언론까지 이어 사회까지 전체적인 시각으로 ‘남자’와 ‘여자’. 거기다, 마지막 문장까지. 정말 통달이네요. 비키니 시위의 영향이 그런 자문까지 물고 이어질 수있는지 몰랐습니다. 가슴은 있는데, 뇌는 없으시군요.

kosokju 2012/02/05 19:22

어떤 사람이 말했다.
어떤 여자가 옷을 벗는 것과 어떤 남자가 그 여자의 옷을 벗기는 것은 다르다고
인간이 보기에는 다르겠지만
신이 보기엔 똑같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이 선하면 결과가 어떻든 선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과정과 의도를 보증할 만큼 완전한지 묻고 싶다.
언제나 과정은 결과보다 불완전하다.

산사람 2012/02/06 00:53

여성성의 정치화…

요즘 정봉주 석방을 위해 몇몇 여성들이 신체의 일부를 노출하면서 시위 또는 퍼포먼스를 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 여성의 신체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것을 비판하는 여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여성성을 이용한 예는 늘 있어왔다. 특히 상업적 이용이 많다. 자동차 광고에 비키니 여성이 나온다. 대포집 벽에 걸린 소주광고 포스터에도 비……

menhir 2012/02/06 01:05

그리고 ‘A컵 가슴’도 신체의 대상화 같은데요. 아~ 물론 진짜 가슴을 의미한다면 아니구요.^^
- D컵 가슴의 menhir -

redzone3 2012/02/09 04:52

사람은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결국 비키니녀의 의도가 무엇이였는지 어떤 결과를 바라고 그런 퍼포먼스를 한것인지 직접적인 해명을 듣지도 않고 자의적인 잣대로 평가하고 이런저런 있어보이는 논리와 역설들을 갖다붙이며 결론내려하는 깡패언론과 논객들이야말로 주체적 사람을 객체화시켜 자신들을 과시하려는 또다른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不 言 長 短
좋으면 좋으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포장하고 안되면 까발려서 회쳐먹으려 들고 사람들의 본성이 의심들 정도로 잔인들 하십니다. 무심히 던질 돌이라도 개구리는 맞아죽는다죠. 자제들 하세요. 아침에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네요. 이런 탁한 공기 말구요. 약수터나 따뜻하게 챙겨입고 다녀와야겠습니다.

aljja 2012/02/12 15:41

충분히 시간이 흐른 후 필자가 다시 본다면 부끄러워 할까?

jSfKowUVZH 2014/02/17 16:28

The Absent Game…

Concerning me and my husband we’ve owned additional MP3 gamers through the years than I can count, including Sansas, iRivers, iPods (basic & touch), the Ibiza Rhapsody, etc. But, the last few years I’ve settled down to one line of gamers….

Success 2014/05/23 07:54

Success…

[...]always a huge fan of linking to bloggers that I love but really don’t get lots of link appreciate from[...]…


  • 오피니언 필진소개

    조윤호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인문학 전반에도 관심을 기울이려 애쓰고 있다. 급진적 정치기획에 관심이 많으며 20대...
  • 카테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