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의실종패션의 경제학

영산대학교 교수. 독일 브레멘대학교 경제학 박사. 네이버 파워블로거(http://blog.naver.com/saintcomf) 소스틴 베블런(Thorstein B. Veblen)과 조셉 슘페터(Joseph. A. Schumpeter)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진화경제학적 방법론'에 따라 자본주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제도경제학"과 "지식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학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BY : 한성안 | 2011.11.14 | 덧글수(2) | 트랙백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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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수십 번도 더 들어 온 말이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대한 학술적, 실천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특히 이 선언 때문에 경제학의 학파가 갈라져 서로 다툰다. 그리고, 이 때문에 경제정책이 달라진다.

“사회적”이란 말은 “개인적”이라는 단어와 대립된다.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은 개인으로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관계를 맺는 이유는 혼자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혼자 살 수 없는가? 인간이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집 안에서 약간만 무거운 것을 옮길 때에도 타인이 필요하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 칠 수 없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첼로와 클라리넷을 함께 연주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서로 나누어 함께 행하면 할 수 없는 것도 해 낼 수 있으며, 할 수 있었던 일을 더 쉽게 해낼 수 있다. 경제학은 이를 “분업”과 “협업”이라고 근사하게 요약한다.

그런데, 인간이 경제적 생존과 합리적 이유 때문만으로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그는 충분히 생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합리적 이유와 아무런 관계도 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자연과 외적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진화해왔다. 곧,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유적존재”(類的存在:Gattungdwesen), 끼리끼리 어울려 사는 존재로 불렀다.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고독을 이겨내지 못한다. 돈이 많아 경제적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도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을 찾는다. 몇 년 전 <아줌마>라는 TV 드라마에서 장진구가 “절대고독”을 입에 달고 다닌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아! 근원적 고독이여, 불면의 밤이여!!

사회적 관계 속에 살기 위해 사람을 찾아 함께 먹고 마시고, 대화하고, 스킨십을 갖기도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 만났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설정하는데 실패하기도 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실패의 눈물과 공생의 갈등은 사람관계를 두렵게 한다.

그러니, 딴 방법을 찾게 된다. 적당할 정도로 소원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법이다. 바로 “남들의 이목”을 끄는 것이다. 주목 받고 싶다.

남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어린이들은 울거나 기이한 행동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럴 수 없다. 관심있는 사람의 주목을 끌기 위해 큰소리로 얘기하거나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시끄럽단다. 소리를 통한 방법이 부적합다고 생각하자 시각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래서, 패션이 등장한다. 휘황찬란한 색깔을 동원해 보았다. 좀 먹혀들었지만 금방 따라해 버린다. 그래서 비싼 명품도 걸쳐 본다. 하지만 이 표준제정자에 대해 정체성을 과시하거나 배제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해 따라한다. 그러니 자신이 돋보이지 않게 된다. 제도경제학자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이를 “과시소비”와 “모방소비”로 지칭하였다. 베블런은 소비행위를 경제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이처럼 사회적으로 이해한다. “사회적 소비이론”이다. 대단히 통찰력 있다. 그래서 내가 베블런을 좋아한다.

남들의 주목을 받음으로써 고독을 이겨내고자 인간의 욕망은 처절하다. 결국, 벗기 시작한다. 남성은 벗기에 실패하였다. 그런데, 수요자가 많아선지 여성은 성공하였다. 드디어 주목 받게 된 것이다. 민소매, 미니스커트, 배꼽티, 핫팬츠가 성공사례에 해당한다(페미니스트들께선 오해하시지 말기를 바란다).

하지만, 성공을 맛 본 여성들이 거기서 멈출 리가 없다. 드디어 “하의실종” 패션이 등장했다. 속옷을 입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주목을 끄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성공하여, 적절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시켜 줌으로써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는지 아직 알 수 없다.

이 전략에 다시 성공하면 여성들은 어떤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까? 더 커진 자신감으로  이 패션을 더 발전시킬 지도 모르겠다! 상상해 보면 아찔하다.

남성들로선 죽을 맛이다. “눈은 가는데 눈을 줄 수 없는 이 모순”은 정말 괴롭다. 특히, 우리 같은 교수들이나 성직자들은 아예 허공을 쳐다봐야 한다. 지하철에선 고개가 40분 동안 하늘로 향하니 목이 뻐근해진다. 이러다 목디스크 걸리거나 사시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나아가 경제학적으로 볼 때도 지나치게 비실용적이다. 너무 짧아 노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들이 무슨 패션을 뽐내든 그걸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건 미학적 판단의 대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름답기도 하다. 나아가, 미를 경제적 시각만으로 판단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대주의자에 가까운 나는 미에 대해 절대적 기준을 들이대기 싫어한다.

무엇보다도 그 전략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근원적 갈망, 그 때문에 밀려오는 근원적 고독으로부터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무시당하지 않고 주목받으면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존재감을 얻으면 안정 속에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극단적이지 않다면 하의실종패션도 좋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발생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어떤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한계생산성 체감의 법칙”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창의적 방법으로 주목을 끌 수도 있다. 그리고 실용적인 방법도 있다. 예컨대, 내면의 세계를 발전시켜 품성이 고매하게 되고 지식이 풍성해지면 사람들이 주목하게 된다. 그것이 풍기는 지적 향기와 따뜻한 교양, 그로부터 뿜어 나오는 “아우라”(Aura)도 벗는 것 못지않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우리는 이를 “매력”, 곧 끄는 힘이라고 한다.

자꾸 벗으면 결국 남는 게 없게 되지만, 열심히 읽고 공부하면 실력이 쌓이게 된다. 이 얼마나 경제적이며 실용적이기도 한가!

 

위 글은 필자의 개인 견해이므로, <한겨레>, <훅>의 편집방향과는 무관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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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boyz 2011/11/14 16:02

남자의 본능적 경향이 변하지 않으면 여자들은 점점 더 벗을 껍니당.
육체적 외로움 때문에. 또 조건 좋은 남자를 차지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경쟁력 때문에.
문제는 성적 매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해 결합된 관계가 지속성이 있느냐입니당.
경제적 사회적 조건과 성적 매력이 좋다면 마음의 지속성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쾌락을 선호할 껍니당.
만약에 여자가 벗었으면서도 열심히 공부해 실력이 있다면 어떡할 껍니까?
지금 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용.

    한성안 2012/01/05 16:18

    늦게 읽게 되어 죄송합니다. “벗는 동시(외모경쟁력)에 내면의 세계(지식경쟁력)를 가꿀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있으면 어떡할거냐? 그리고 이런 가설이 현실로 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재밌는 분석입니다. 여기서 모든 답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입니다. 외모수요자(남성), 외모생산자(여성), 외모시장 등 여러 가지 차원에서 접근해 봐야겠군요. 좋은 문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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